155-3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3.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210523 형제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길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The King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

155:3.1 (1727.1) Although Jesus did no public work during this two weeks’ sojourn near Caesarea-Philippi, the apostles held numerous quiet evening meetings in the city, and many of the believers came out to the camp to talk with the Master. Very few were added to the group of believers as a result of this visit. Jesus talked with the apostles each day, and they more clearly discerned that a new phase of the work of preaching the kingdom of heaven was now beginning. They were commencing to comprehend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not meat and drink but the realization of the spiritual joy of the acceptance of divine sonship.” 예수께서 가이사랴-빌립보 인근에서 이렇게 두 주간 머물면서 공적인 일을 하지 않았지만, 사도들은 도시에서 수없이 조용한 저녁 모임을 열었고, 여러 신자가 주(主)님과 이야기하려고 야영지로 나왔습니다. 이런 방문의 결과로 신자 집단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사도들과 이야기했고, 그들은 하늘나라를 전하는 과업의 새로운 국면이 이제 시작되고 있음을 더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하늘나라가 먹고 마심이 아니라 신적 아들 됨을 수용하는 영적 기쁨의 실현임(롬14:17)”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155:3.2 (1727.2) The sojourn at Caesarea-Philippi was a real test to the eleven apostles; it was a difficult two weeks for them to live through. They were well-nigh depressed, and they missed the periodic stimulation of Peter’s enthusiastic personality. In these times it was truly a great and testing adventure to believe in Jesus and go forth to follow after him. Though they made few converts during these two weeks, they did learn much that was highly profitable from their daily conferences with the Master. 가이사랴-빌립보에 머물렀던 것은 11 사도들에게 진정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들에게 2주간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거의 풀이 죽었고, 그들은 베드로의 열렬한 성격에서 나온 간헐적 자극이 그리웠습니다. 이 기간에 예수를 믿고 그를 따라 나아가는 것은 정말로 고도로 노력이 요구되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2주간에 거의 개종자들이 없었지만, 그들은 주(主)님과 매일 회의하면서 아주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155:3.3 (1727.3) The apostles learned that the Jews were spiritually stagnant and dying because they had crystallized truth into a creed; that when truth becomes formulated as a boundary line of self-righteous exclusiveness instead of serving as signposts of spiritual guidance and progress, such teachings lose their creative and life-giving power and ultimately become merely preservative and fossilizing.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진리를 신조(信條)로 명확히 정리했기 때문에 그들이 영적으로 침체하여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리가 영적 안내와 진보의 명확한 길잡이로 섬기는 대신에 독선적(獨善的) 배타주의(排他主義)의 경계선으로 나타날 때, 그런 가르침은 그 창조적인 생명력을 잃고, 결국 보존된 화석이 될 뿐임을 알았습니다.

155:3.4 (1727.4) Increasingly they learned from Jesus to look upon human personalities in terms of their possibilities in time and in eternity. They learned that many souls can best be led to love the unseen God by being first taught to love their brethren whom they can see. And it was in this connection that new meaning became attached to the Master’s pronouncement concerning unselfish service for one’s fellows: “Inasmuch as you did it to one of the least of my brethren, you did it to me.” 그들은 예수로부터 인간 고유성들을, 시간과 영원 안에 있는 그들의 장래성(將來性)으로 환산하기를 점차 배웠습니다. 그들은, 여러 혼(魂)이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들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움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가장 잘 이끌릴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관해, 이타적으로 동료들을 섬기는 주(主)님의 선언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 중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은, 너희가 내게 행한 것이니라(마25:40).”

155:3.5 (1727.5) One of the great lessons of this sojourn at Caesarea had to do with the origin of religious traditions, with the grave danger of allowing a sense of sacredness to become attached to nonsacred things, common ideas, or everyday events. From one conference they emerged with the teaching that true religion was man’s heartfelt loyalty to his highest and truest convictions. 가이사랴에 이렇게 머물면서 얻은 위대한 교훈 중 하나는, 신성하지 않은 것들, 즉 평범한 생각들 혹은 일상적 사건들에 신성한 느낌을 부여하도록 허용하는, 아주 심각한 위험이 따르는, 종교적 전통의 기원과 관련되었습니다. 한 회의에서, 참된 종교는, 인간 최고의 가장 참된 확신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충성이라는 교훈이, 그들에게 분명해졌습니다.

155:3.6 (1727.6) Jesus warned his believers that, if their religious longings were only material, increasing knowledge of nature would, by progressive displacement of the supposed supernatural origin of things, ultimately deprive them of their faith in God. But that, if their religion were spiritual, never could the progress of physical science disturb their faith in eternal realities and divine values. 예수는 자기 신자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열망이 단지 물질적이었다면, 사물의 초자연적 기원이라고 가정했던 것이, 자연에 대한 지식의 증가로, 점차 치환되어, 결국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가 영적이었다면, 물리적 과학의 진보가 영원한 실체와 신적 가치들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결코 방해할 수 없으리라.

155:3.7 (1727.7) They learned that, when religion is wholly spiritual in motive, it makes all life more worth while, filling it with high purposes, dignifying it with transcendent values, inspiring it with superb motives, all the while comforting the human soul with a sublime and sustaining hope. True religion is designed to lessen the strain of existence; it releases faith and courage for daily living and unselfish serving. Faith promotes spiritual vitality and righteous fruitfulness. 종교의 동기가 완전히 영적이면, 숭고한 지속적 희망으로 인간의 혼(魂)을 계속 격려하면서, 그것은 모든 삶을 더 가치 있게 하고, 그것을 높은 목적으로 채우며, 그것을 초월적 가치로 품위를 높이고, 그것을 훌륭한 동기로 고무(鼓舞)한다는 것을, 그들이 들었습니다. 참된 종교는 존재의 긴장을 줄이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생활과 이타적 섬김을 위한 신앙과 용기를 내보냅니다. 신앙은 영적 활력과 의로운 결실을 증진합니다.

155:3.8 (1727.8) Jesus repeatedly taught his apostles that no civilization could long survive the loss of the best in its religion. And he never grew weary of pointing out to the twelve the great danger of accepting religious symbols and ceremonies in the place of religious experience. His whole earth life was consistently devoted to the mission of thawing out the frozen forms of religion into the liquid liberties of enlightened sonship. 예수님은 자기 사도들에게, 어떤 문명도 그 종교의 최고를 상실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반복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치지 않고 12명에게, 종교적 체험 대신에 종교적 상징과 의식(儀式)을 수용하는 심각한 위험을 지적했습니다. 그의 모든 지상 생활은, 얼어붙은 형태의 종교를 아들 된 영적 통찰력의 자유가 흘러가도록 녹이는 사명에 시종일관 바쳐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