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2.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171217 시몬 베드로 1 요1:40-42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0 Andrew, Simon Peter’s brother, was one of the two who heard what John had said and who had followed Jesus. 41 The first thing Andrew did was to find his brother Simon and tell him, “We have found the Messiah” (that is, the Christ). 42 And he brought him to Jesus. Jesus looked at him and said, “You are Simon son of John. You will be called Cephas” (which, when translated, is Peter).

139:2.1 (1550.4) When Simon joined the apostles, he was thirty years of age. He was married, had three children, and lived at Bethsaida, near Capernaum. His brother, Andrew, and his wife’s mother lived with him. Both Peter and Andrew were fisher partners of the sons of Zebedee. 시몬이 사도들에 합류했을 때, 그는 30세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세 자녀가 있었고, 가버나움 인근 벳새다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형 안드레와 장모가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둘 다 세베대의 아들들과 동업하는 어부들이었습니다.

139:2.2 (1550.5) The Master had known Simon for some time before Andrew presented him as the second of the apostles. When Jesus gave Simon the name Peter, he did it with a smile; it was to be a sort of nickname. Simon was well known to all his friends as an erratic and impulsive fellow. True, later on, Jesus did attach a new and significant import to this lightly bestowed nickname. 주(主)님은 안드레가 시몬을 두 번째 사도로 소개하기 전부터, 얼마간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을 때, 그는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것은 일종의 별명이 될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모든 그의 친구들에게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동료로 유명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가볍게 주신 별명에, 나중에 새롭고 뜻 깊은 의미를 붙인 것이 사실입니다.

139:2.3 (1550.6) Simon Peter was a man of impulse, an optimist. He had grown up permitting himself freely to indulge strong feelings; he was constantly getting into difficulties because he persisted in speaking without thinking. This sort of thoughtlessness also made incessant trouble for all of his friends and associates and was the cause of his receiving many mild rebukes from his Master. The only reason Peter did not get into more trouble because of his thoughtless speaking was that he very early learned to talk over many of his plans and schemes with his brother, Andrew, before he ventured to make public proposals. 시몬 베드로는 충동적인 낙천가(樂天家)였습니다. 그는 격한 감정에 자유롭게 탐닉하도록 스스로 허용하며 자랐습니다. 그는 생각 없이 말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항상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런 식의 그의 경솔함은 또한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모두에게 끊임없는 골칫거리가 되었고, 그가 주(主)님으로부터 가벼운 꾸중을 많이 들었던 이유였습니다. 베드로의 분별없는 말 때문에 더 심한 곤경에 빠지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그가 과감히 공적 제안을 내놓기 전에, 많은 자기 계획들과 기획들을 그의 형 안드레와 의논하기를 아주 일찍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139:2.4 (1550.7) Peter was a fluent speaker, eloquent and dramatic. He was also a natural and inspirational leader of men, a quick thinker but not a deep reasoner. He asked many questions, more than all the apostles put together, and while the majority of these questions were good and relevant, many of them were thoughtless and foolish. Peter did not have a deep mind, but he knew his mind fairly well. He was therefore a man of quick decision and sudden action. While others talked in their astonishment at seeing Jesus on the beach, Peter jumped in and swam ashore to meet the Master. 베드로는 극적인 능변의 유창한 연사(演士)였습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타고난 지도자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지만, 심오한 추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도들 모두를 합한 이상으로 많은 질문들을 했는데, 이 질문의 대부분은 선하고 적절했지만, 그 중 많은 것들은 분별이 없고 어리석었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마음은 없었지만, 자기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빨리 결정하고 급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해변에서 예수님을 보고 놀라서 말하는 동안, 베드로는 물에 뛰어 들어, 주(主)님을 만나려고 해변으로 헤엄쳤습니다.

139:2.5 (1551.1) The one trait which Peter most admired in Jesus was his supernal tenderness. Peter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Jesus’ forbearance. He never forgot the lesson about forgiving the wrongdoer, not only seven times but seventy times and seven. He thought much about these impressions of the Master’s forgiving character during those dark and dismal days immediately following his thoughtless and unintended denial of Jesus in the high priest’s courtyard. 베드로가 가장 경탄한 예수님의 한 가지 특성은 더할 수 없는 다정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관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싫증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잘못하는 사람을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것에 대한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안마당에서 경솔히 뜻하게 않게 예수님을 부인한 직후, 그 어둡고 우울한 며칠 주(主)님의 용서하는 성품에서 받은 이 인상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139:2.6 (1551.2) Simon Peter was distressingly vacillating; he would suddenly swing from one extreme to the other. First he refused to let Jesus wash his feet and then, on hearing the Master’s reply, begged to be washed all over. But, after all, Jesus knew that Peter’s faults were of the head and not of the heart. He was one of the most inexplicable combinations of courage and cowardice that ever lived on earth. His great strength of character was loyalty, friendship. Peter really and truly loved Jesus. And yet despite this towering strength of devotion he was so unstable and inconstant that he permitted a servant girl to tease him into denying his Lord and Master. Peter could withstand persecution and any other form of direct assault, but he withered and shrank before ridicule. He was a brave soldier when facing a frontal attack, but he was a fear-cringing coward when surprised with an assault from the rear. 시몬 베드로는 비참하리만큼 동요했습니다.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갑자기 흔들거리곤 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께서 자기 발을 씻지 못하게 했다가 그 후, 주(主)님의 대답을 듣고, 온 몸을 씻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베드로의 단점이 머리에 있지, 심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그 때까지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용기와 비겁함이 가장 희한하게 섞인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충성과 우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실제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높이 솟는 헌신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어서 여종이 자신을 놀려 그의 주(主)님이시며 선생님을 부인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적인 모욕은 잘 견디었지만, 조롱 앞에서는 의기소침으로 위축되었습니다. 그는 전면 공격을 당했을 때는 용감한 군인이었지만, 후면 습격으로 놀랄 때에는 두려움으로 움츠린 겁쟁이였습니다.

139:2.7 (1551.3) Peter was the first of Jesus’ apostles to come forward to defend the work of Philip among the Samaritans and Paul among the gentiles; yet later on at Antioch he reversed himself when confronted by ridiculing Judaizers, temporarily withdrawing from the gentiles only to bring down upon his head the fearless denunciation of Paul. 베드로는, 빌립의 사마리아인들 과업과 바울의 이방인들 과업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앞장서서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자신의 입장을 뒤집어, 잠시 이방인으로부터 물러나, 바울의 두려움이 없는 비난에 고개를 떨 꿀 뿐이었습니다.

139:2.8 (1551.4) He was the first one of the apostles to make wholehearted confession of Jesus’ combined humanity and divinity and the first — save Judas — to deny him. Peter was not so much of a dreamer, but he disliked to descend from the clouds of ecstasy and the enthusiasm of dramatic indulgence to the plain and matter-of-fact world of reality. 그는 사도들 중에서 예수님의 통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전심으로 고백했고, 유다를 제외하고 예수를 부인한 첫 번째 사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심한 몽상가는 아니었지만, 환희의 구름과 극적 탐닉의 열광에서, 실체의 평범한 사실 그대로의 세계로 내려오기를 싫어했습니다.

171224 시몬 베드로 2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Truly, truly, I say to you, when you were younger, you used to gird yourself and walk wherever you wished; but when you grow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one else will gird you, and bring you where you do not wish to go(NASV).”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39:2.9 (1551.5) In following Jesus, literally and figuratively, he was either leading the procession or else trailing behind — “following afar off.” But he was the outstanding preacher of the twelve; he did more than any other one man, aside from Paul, to establish the kingdom and send its messengers to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in one generation. 베드로의 진폭 예수님을 따르면서, 문자 그대로, 비유적으로, 그는 행렬을 이끌거나 아니면 뒤에 – “멀찍이 뒤에 떨어져서” –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12명 중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제외하고, 한 세대에, 나라를 세우고, 지구의 전 지역에 메신저들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보냈습니다.

139:2.10 (1551.6) After his rash denials of the Master he found himself, and with Andrew’s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guidance he again led the way back to the fish nets while the apostles tarried to find out what was to happen after the crucifixion. When he was fully assured that Jesus had forgiven him and knew he had been received back into the Master’s fold, the fires of the kingdom burned so brightly within his soul that he became a great and saving light to thousands who sat in darkness. 베드로의 반전 주(主)님을 경솔히 부인한 후, 그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안드레의 공감하며 분별 있는 안내와 함께, 사도들이 십자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다리며 찾는 동안, 그는 다시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가는 길로 앞장섰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용서하셨음을 충분히 확신하고, 자신이 주(主)님의 신도로 복귀하여 수용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라의 불빛이 그의 혼 안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에 앉아 있던 수천 명에게 위대한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139:2.11 (1551.7) After leaving Jerusalem and before Paul became the leading spirit among the gentile Christian churches, Peter traveled extensively, visiting all the churches from Babylon to Corinth. He even visited and ministered to many of the churches which had been raised up by Paul. Although Peter and Paul differed much in temperament and education, even in theology, they worked together harmoniously for the upbuilding of the churches during their later years. 형제정신 실천 예루살렘을 떠난 뒤, 바울이 이방의 기독교회들을 이끄는 인물이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빌론에서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들을 방문하며 널리 여행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세운 많은 교회들까지도 방문하고 섬겼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은, 기질과 교육, 그리고 신학도 많이 달랐지만, 그들은 후년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어울려 함께 일했습니다.

139:2.12 (1552.1) Something of Peter’s style and teaching is shown in the sermons partially recorded by Luke and in the Gospel of Mark. His vigorous style was better shown in his letter known as the First Epistle of Peter; at least this was true before it was subsequently altered by a disciple of Paul. 베드로의 스타일과 교훈의 일부는 누가가 부분적으로 기록한 설교와 마가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강력한 스타일은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 잘 나타나 있는데, 나중에 바울의 제자가 (베드로전서)를 변경하기 전까지는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39:2.13 (1552.2) But Peter persisted in making the mistake of trying to convince the Jews that Jesus was, after all, really and truly the Jewish Messiah. Right up to the day of his death, Simon Peter continued to suffer confusion in his mind between the concepts of Jesus as the Jewish Messiah, Christ as the world’s redeemer, and the Son of Man as the revelation of God, the loving Father of all mankind. 베드로의 실수와 혼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진정한 유대인의 메시아였다고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잘못을 고집했습니다. 바로 죽는 그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속(救贖)자는 개념과 사람의 아들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라는 개념 사이에서 계속 혼란을 겪었습니다.

139:2.14 (1552.3) Peter’s wife was a very able woman. For years she labored acceptably as a member of the women’s corps, and when Peter was driven out of Jerusalem, she accompanied him upon all his journeys to the churches as well as on all his missionary excursions. And the day her illustrious husband yielded up his life, she was thrown to the wild beasts in the arena at Rome. 베드로의 아내는 매우 유능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 해 그녀는 여인들 분대(여전도회)의 일원으로 기쁘게 수고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자, 그녀는 그의 모든 선교여행 뿐 아니라 모든 교회로 가는 여행에 그와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자기 남편이 죽는 날, 그녀는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던져졌습니다.

139:2.15 (1552.4) And so this man Peter, an intimate of Jesus, one of the inner circle, went forth from Jerusalem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with power and glory until the fullness of his ministry had been accomplished; and he regarded himself as the recipient of high honors when his captors informed him that he must die as his Master had died — on the cross. And thus was Simon Peter crucified in Rome. 베드로와 사명 완수와 순교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과 친밀한, 내부자 중 하나였던, 이 사람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충만히 완수하기까지, 권능과 영광으로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를 체포한 자가, 베드로가 그의 주(主)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 죽어야만 한다고 알려주자, 자신을 높은 명예를 받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