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6 The Second Decision 두 번째 결정

6. The Second Decision 두 번째 결정

170823 수요 예수97 마4:3-4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3 The tempter came to him and said, “If you are the Son of God, tell these stones to become bread.” 4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136:6.1 (1517.3) Having settled his policy concerning all personalities of all classes of his created intelligences, so far as this could be determined in view of the inherent potential of his new status of divinity, Jesus now turned his thoughts toward himself. What would he, now the fully self-conscious creator of all things and beings existent in this universe, do with these creator prerogatives in the recurring life situations which would immediately confront him when he returned to Galilee to resume his work among men? In fact, already, and right where he was in these lonely hills, had this problem forcibly presented itself in the matter of obtaining food. By the third day of his solitary meditations the human body grew hungry. Should he go in quest of food as any ordinary man would, or should he merely exercise his normal creative powers and produce suitable bodily nourishment ready at hand? And this great decision of the Master has been portrayed to you as a temptation — as a challenge by supposed enemies that he “command that these stones become loaves of bread.” 예수님은 자신의 새로운 신성의 지위에 선천적으로 잠재된 관점에서 결정될 수 있는 한, 자신이 창조한 지능존재들이 지닌 모든 등급의 모든 고유성에 관련된 자신의 정책을 정하게 되자, 이제 그의 생각을 그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그는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과 존재의 창조자임을 충분하게 자아-의식하는 지금, 이들 창조자 특권으로, 그가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갈릴리로 돌아갔을 때, 즉시 부딪쳐오는 반복적 일생의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이 외로운 언덕에 계셨던 바로 그 자리에서 벌써 음식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 당연히 이 문제가 제시되었습니다. 외로운 명상 가운데 3일째가 되자, 인간적 육신은 점점 배고프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음식을 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자신의 정상적 창조적 권능을 발휘하고 몸을 위해 적절한 영양분을 즉시 쓸 수 있도록 만들어낼 것인가? 이러한 주(主)님의 중대한 결정이 너희들에게는 유혹─가상의 적들이 그가 “이 돌이 빵으로 변하게 명령하도록” 도전했다고─으로 묘사되어졌습니다.

136:6.2 (1518.1) Jesus thus settled upon another and consistent policy for the remainder of his earth labors. As far as his personal necessities were concerned, and in general even in his relations with other personalities, he now deliberately chose to pursue the path of normal earthly existence; he definitely decided against a policy which would transcend, violate, or outrage his own established natural laws. But he could not promise himself, as he had already been warned by his Personalized Adjuster, that these natural laws might not, in certain conceivable circumstances, be greatly accelerated. In principle, Jesus decided that his lifework should be organized and prosecuted in accordance with natural law and in harmony with the existing social organization. The Master thereby chose a program of living which was the equivalent of deciding against miracles and wonders. Again he decided in favor of “the Father’s will”; again he surrendered everything into the hands of his Paradise Father.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 나머지 지상 임무에 대한 다른 하나의 일관된 방침을 결정하였습니다. 그 자신의 개인적 필요성에 관한 것과 일반적으로 다른 고유성들과의 그의 관계에 관한 것에서까지도, 이제 그는 이 세상의 정상적인 존재로서의 길을 신중하게 추구하기로 선택하였으며; 자신이 세운 자연 법칙을 초월하거나 위반하거나 어기는 정책은 피하기로 분명하게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미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에 의하여 경고를 받았던 바와 같이, 어떤 상상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자연적인 법칙이 크게 가속(加速)될 수 없다고 자신에게 약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필생의 사업은 자연적인 법에 따르고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조직에 조화를 이루면서 조직되어지고 실행되어져야만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주(主)님은 거기에서 기적이나 이적을 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상당하는 삶의 프로그램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천국 아버지의 손에 맡겼습니다.

136:6.3 (1518.2) Jesus’ human nature dictated that the first duty was self-preservation; that is the normal attitude of the natural man on the worlds of time and space, and it is, therefore, a legitimate reaction of a Urantia mortal. But Jesus was not concerned merely with this world and its creatures; he was living a life designed to instruct and inspire the manifold creatures of a far-flung universe. 예수님의 인간 본성은 첫 번째 의무가 자아-보존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사는 자연적인 인간의 정상적인 태도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지구(유란시아) 필사자의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이 세상과 그 곳의 창조물들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광대하게 퍼져있는 우주의 다양한 창조물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도록 계획된 일생을 사셨습니다.

136:6.4 (1518.3) Before his baptismal illumination he had lived in perfect submission to the will and guidance of his heavenly Father. He emphatically decided to continue on in just such implicit mortal dependence on the Father’s will. He purposed to follow the unnatural course — he decided not to seek self-preservation. He chose to go on pursuing the policy of refusing to defend himself. He formulated his conclusions in the words of Scripture familiar to his human mind: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from the mouth of God.” In reaching this conclusion in regard to the appetite of the physical nature as expressed in hunger for food, the Son of Man made his final declaration concerning all other urges of the flesh and the natural impulses of human nature. 세례로 조명을 받기 전에도,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과 인도에 완전한 복종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필사자로서의 그러한 절대적 의존을 계속하기로 단호하게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따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 자아-보존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방침을 계속 추구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한 결론들을, 잘 알고 있는 성경 말씀으로 그의 인간 마음에 공식화하였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신8:3, 눅4:3-4).” 배고플 때 음식을 구하는 표현과 같은 육체적 성질의 식욕에 관해서 이러한 결론을 내리면서, 이제 사람의 아들은 모든 다른 육체적 욕구나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충동들에 관하여 최종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136:6.5 (1518.4) His superhuman power he might possibly use for others, but for himself, never. And he pursued this policy consistently to the very end, when it was jeeringly said of him: “He saved others; himself he cannot save” — because he would not.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초인간적인 권능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마27:42a, 막15:31, 눅23:35).”라고 그를 조롱하여 말할 때, 그는 이러한 방침을 바로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지켰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36:6.6 (1518.5) The Jews were expecting a Messiah who would do even greater wonders than Moses, who was reputed to have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in a desert place and to have fed their forefathers with manna in the wilderness. Jesus knew the sort of Messiah his compatriots expected, and he had all the powers and prerogatives to measure up to their most sanguine expectations, but he decided against such a magnificent program of power and glory. Jesus looked upon such a course of expected miracle working as a harking back to the olden days of ignorant magic and the degraded practices of the savage medicine men. Possibly, for the salvation of his creatures, he might accelerate natural law, but to transcend his own laws, either for the benefit of himself or the overawing of his fellow men, that he would not do. And the Master’s decision was final. 유대인들은, 사막의 바위로부터 물이 솟아나게 하고, 광야에서 만나로 그들의 선조들을 먹였다고 소문이 난 모세보다도 더 큰 이적을 베풀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동포 종족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어떤 종류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가장 낙관적인 기대들을 채워줄 수 있는 모든 능력과 특권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권능과 영광으로 장엄한 그러한 계획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하는 기적을 행하는 과정은, 미개한 주술사들이 무지한 마술을 쓰고, 퇴화된 관습을 지녔던 옛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마도, 자기 창조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가 자연의 법을 가속시키실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동료 사람들을 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법을 초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主)님의 결정은 최종적이었습니다.

136:6.7 (1518.6) Jesus sorrowed for his people; he fully understood how they had been led up to the expectation of the coming Messiah, the time when “the earth will yield its fruits ten thousandfold, and on one vine there will be a thousand branches, and each branch will produce a thousand clusters, and each cluster will produce a thousand grapes, and each grape will produce a gallon of wine.” The Jews believed the Messiah would usher in an era of miraculous plenty. The Hebrews had long been nurtured on traditions of miracles and legends of wonders.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가엾게 여겼으며; 그는 그들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그러한 기대, 그가 올 때 “세상은 그 열매를 1만 배로 수확할 것이며, 한 포도나무에는 1천 개의 가지들이 있을 것이며, 각각의 가지는 1천 개의 포도송이를 생산할 것이며, 송이마다 포도알 1천 개를 맺으며, 포도 알마다 포도주 1갤런(3.79리터)을 생산하리라(사4:2, 5:10, 에녹10:18-20a).”라는 기대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풍성한 기적의 시대를 열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기적에 대한 전통들과 이적에 대한 전설들로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136:6.8 (1519.1) He was not a Messiah coming to multiply bread and wine. He came not to minister to temporal needs only; he came to reveal his Father in heaven to his children on earth, while he sought to lead his earth children to join him in a sincere effort so to live as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그는 빵과 포도주를 늘리려고 오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현세의 필요만을 보살피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오셨으며, 동시에 세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진지한 노력으로 그에게 연합하도록 이끌려고 애쓰셨습니다.

136:6.9 (1519.2) In this decision Jesus of Nazareth portrayed to an onlooking universe the folly and sin of prostituting divine talents and God-given abilities for personal aggrandizement or for purely selfish gain and glorification. That was the sin of Lucifer and Caligastia. 이러한 결정을 통하여, 나사렛 예수는 개인적 세력의 확장 또는 순전히 이기적인 이익과 영광을 위하여 신적 재능과 하나님께서-주신 능력을 팔아넘기는 것은 어리석으며, 죄 짓는 것임을, 지켜보고 있는 우주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루시퍼와 칼리가스티아의 죄였습니다.

136:6.10 (1519.3) This great decision of Jesus portrays dramatically the truth that selfish satisfaction and sensuous gratification, alone and of themselves, are not able to confer happiness upon evolving human beings. There are higher values in mortal existence — intellectual mastery and spiritual achievement — which far transcend the necessary gratification of man’s purely physical appetites and urges. Man’s natural endowment of talent and ability should be chiefly devoted to the development and ennoblement of his higher powers of mind and spirit. 예수님의 이 위대한 결정은, 이기적인 만족과 감성적인 희열이 홀로 그 자체만으로는 진화하는 인간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필사자 존재는 더 높은 가치들 – 지적 통달과 영적 성취 –이 있으며, 그것들은 사람의 순수한 육체적 욕구와 충동에 필요한 만족을 훨씬 더 초월합니다. 사람이 본래부터 부여받은 재능과 능력은 자신의 더 높은 마음과 영의 권능을 개발하고 높이는 일에 주로 바쳐져야만 합니다.

136:6.11 (1519.4) Jesus thus revealed to the creatures of his universe the technique of the new and better way, the higher moral values of living and the deeper spiritual satisfactions of evolutionary human existence on the worlds of space.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 우주의 창조물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삶의 가치와 공간의 세계에서 진화하는 인간 존재가 누릴 더 깊은 영적 만족의 새롭고 나은 길로 가는 기법을 계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