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4 Plans for Public Work 공(公)사역 계획

4. Plans for Public Work 공(公)사역 계획

170726 수요 예수94-95 눅4:1-2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1 Jesus, full of the Holy Spirit, returned from the Jordan and was led by the Spirit in the desert, 2 where for forty days he was tempted by the devil. He ate nothing during those days, and at the end of them he was hungry.

136:4.1 (1514.2) Day by day, up in the hills, Jesus formulated the plans for the remainder of his Urantia bestowal. He first decided not to teach contemporaneously with John. He planned to remain in comparative retirement until the work of John achieved its purpose, or until John was suddenly stopped by imprisonment. Jesus well knew that John’s fearless and tactless preaching would presently arouse the fears and enmity of the civil rulers. In view of John’s precarious situation, Jesus began definitely to plan his program of public labors in behalf of his people and the world, in behalf of every inhabited world throughout his vast universe. Michael’s mortal bestowal was on Urantia but for all worlds of Nebadon. 날마다 언덕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지구(유란시아) 증여의 나머지 기간을 위한 계획들을 세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요한과 같은 시기에 가르침을 시작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요한이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가 갑자기 구속되는 불상사로 중단하게 되기 전까지는, 대체로 물러서 있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그 두려움 없는 막무가내의 설교는 곧 시민 통치자들의 두려움과 반감을 유발시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불확실한 상황을 염두에 두시면서, 예수님은 자기의 민족과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그의 광대한 우주를 망라하여 거주민이 사는 모든 세상들을 위하여, 공적 수고의 과정을 분명하게 계획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가엘의 필사자 증여는 지구(유란시아)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증여는 네바돈의 모든 세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136:4.2 (1514.3) The first thing Jesus did, after thinking through the general plan of co-ordinating his program with John’s movement, was to review in his mind the instructions of Immanuel. Carefully he thought over the advice given him concerning his methods of labor, and that he was to leave no permanent writing on the planet. Never again did Jesus write on anything except sand. On his next visit to Nazareth, much to the sorrow of his brother Joseph, Jesus destroyed all of his writing that was preserved on the boards about the carpenter shop, and which hung upon the walls of the old home. And Jesus pondered well over Immanuel’s advice pertaining to his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attitude toward the world as he should find it. 예수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요한의 움직임에 맞추어 자신의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대체적인 계획을 고려한 후에, 임마누엘의 지시들을 마음속에서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 이행의 방법들에 관한 것들과 그 행성에 그의 어떤 영구한 필체도 남기지 말라는 조언을 조심스럽게 잘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래 위를 제외하고는, 예수님은 결코 다시는 어떤 것에도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나사렛을 방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목판에 써서 목공소 주위에 걸려 있는 글씨들과 그의 고향집 벽에 걸려있던 자신의 글씨들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렸는데, 그 일은 그의 동생 요셉을 매우 서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당면하여야 할 세상에 대한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태도에 관한 임마누엘의 조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136:4.3 (1514.4) Jesus did not fast during this forty days’ isolation. The longest period he went without food was his first two days in the hills when he was so engrossed with his thinking that he forgot all about eating. But on the third day he went in search of food. Neither was he tempted during this time by any evil spirits or rebel personalities of station on this world or from any other world. 예수님은 이 40일(신으로서 증여 시작)의 고립 기간 동안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낸 가장 긴 기간은, 언덕에서 그가 너무 생각에 골똘한 나머지 먹는 것조차 잊었던, 첫 2일 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날에는 음식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이 세상 혹은 어떤 다른 세상의 반역적인 어떤 악의 영들이나 혹은 반역적인 고유성들에 의해 유혹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136:4.4 (1514.5) These forty days were the occasion of the final conference between the human and the divine minds, or rather the first real functioning of these two minds as now made one. The results of this momentous season of meditation demonstrated conclusively that the divine mind has triumphantly and spiritually dominated the human intellect. The mind of man has become the mind of God from this time on, and though the selfhood of the mind of man is ever present, always does this spiritualized human mind say,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이 40일 기간은, 인간적이고 신성한 마음들 사이에 최종적인 협의가 이루어진 경우였으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마음들이 이제 하나가 되어 이루어진 최초의 실제 활동이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명상 기간의 결과들은 신적 마음이 인간의 지성을 이기고 영적으로 지배해 왔음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 시간으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이 되었으며, 비록 사람 마음의 자아신분이 언제나 존재해 있었지만, 영성화된 이 사람의 마음은 항상,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136:4.5 (1514.6) The transactions of this eventful time were not the fantastic visions of a starved and weakened mind, neither were they the confused and puerile symbolisms which afterward gained record as the “temptations of Jesus in the wilderness.” Rather was this a season for thinking over the whole eventful and varied career of the Urantia bestowal and for the careful laying of those plans for further ministry which would best serve this world while also contributing something to the betterment of all other rebellion-isolated spheres. Jesus thought over the whole span of human life on Urantia, from the days of Andon and Fonta, down through Adam’s default, and on to the ministry of the Melchizedek of Salem. 이러한 사건이 많은 시기의 활동들은 굶주리고 허약해진 마음으로 공상적인 환상을 본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광야에서의 예수의 시험”으로 나중에 붙여진 기록처럼 혼란되고 미숙한 상징주의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전체적으로 파란이 많고 다양한 지구(유란시아) 증여의 생애를 숙고해 보고, 한편으로는 반역으로 고립된 다른 모든 구체들의 개선에 무언가 기여하면서 이 세상을 최선으로 섬기는 봉사가 되도록 추후의 사역에 대한 계획들을 신중하게 수립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돈과 폰타의 시대로부터 아담의 불이행을 거쳐 살렘의 멜기세덱의 사역에 이르기까지 지구(유란시아)의 인간 일생의 전체 여정을 두루 살펴보셨습니다.

136:4.6 (1514.7) Gabriel had reminded Jesus that there were two ways in which he might manifest himself to the world in case he should choose to tarry on Urantia for a time. And it was made clear to Jesus that his choice in this matter would have nothing to do with either his universe sovereignty or the termination of the Lucifer rebellion. These two ways of world ministry were: 가브리엘은 그가 지구(유란시아)에 한동안 더 머물기를 선택할 경우에,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는 데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예수님께 상기시켰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선택은 그의 우주 주권이나 혹은 루시퍼 반역의 종결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예수님께 분명하게 알렸습니다. 이 세상 사역에서의 두 가지 방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36:4.7 (1515.1) 1. His own way — the way that might seem most pleasant and profitable from the standpoint of the immediate needs of this world and the present edification of his own universe. 그 자신의 길(방법)─이 세상의 즉각적인 필요성들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우주에서의 당면한 계발(啓發)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적절히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

136:4.8 (1515.2) 2. The Father’s way — the exemplification of a farseeing ideal of creature life visualized by the high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 of universes.아버지의 길(방법)─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천국 행정을 맡은 높은 고유성들에 의해 구상되어진 것으로, 창조물 일생에 대해 선견지명이 있는 이상(理想)을 모범으로 보이는 것.

136:4.9 (1515.3) It was thus made clear to Jesus that there were two ways in which he could order the remainder of his earth life. Each of these ways had something to be said in its favor as it might be regarded in the light of the immediate situation. The Son of Man clearly saw that his choice between these two modes of conduct would have nothing to do with his reception of universe sovereignty; that was a matter already settled and sealed on the record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only awaited his demand in person. But it was indicated to Jesus that it would afford his Paradise brother, Immanuel, great satisfaction if he, Jesus, should see fit to finish up his earth career of incarnation as he had so nobly begun it, always subject to the Father’s will. On the third day of this isolation Jesus promised himself he would go back to the world to finish his earth career, and that in a situation involving any two ways he would always choose the Father’s will. And he lived out the remainder of his earth life always true to that resolve. Even to the bitter end he invariably subordinated his sovereign will to that of his heavenly Father. 그래서 예수님께는 지상에서의 자기 여생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방법들이 있다는 것이 뚜렷해졌습니다. 눈앞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들 각각의 방법은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이 두 가지 행동 방법들 중에서 자신이 취한 선택은 자신의 우주 주권을 받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셨으며; 그 문제는 이미 결정되었고 우주들의 우주에서 기록으로 날인(捺印)되어서 단지 그가 직접 요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항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그렇게 고귀하게 시작한 것처럼, 육신화하는 그의 지상 생애도 그에 맞춰 고귀하게 완결되도록 한다면, 그의 천국 형제인 임마누엘에게 큰 만족감을 주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 전달되었습니다. 이 고립 기간의 3일째 되는 날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상 생애를 마치기 위해 그 세상으로 돌아갈 경우에 포함되는 두 가지 길 중에서, 항상 아버지의 뜻을 선택할 것을, 자신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머지 일생 동안 항상 이 결심에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심지어 쓰라린 마지막까지도 그는 변함없이 그의 주권적 뜻을 하늘 아버지의 뜻 아래로 종속시켰습니다.

136:4.10 (1515.4) The forty days in the mountain wilderness were not a period of great temptation but rather the period of the Master’s great decisions. During these days of lone communion with himself and his Father’s immediate presence — the Personalized Adjuster (he no longer had a personal seraphic guardian) — he arrived, one by one, at the great decisions which were to control his policies and conduct for the remainder of his earth career. Subsequently the tradition of a great temptation became attached to this period of isolation through confusion with the fragmentary narratives of the Mount Hermon struggles, and further because it was the custom to have all great prophets and human leaders begin their public careers by undergoing these supposed seasons of fasting and prayer. It had always been Jesus’ practice, when facing any new or serious decisions, to withdraw for communion with his own spirit that he might seek to know the will of God. 험악한 산 속에서의 40일은, 큰 시험을 받은 기간이 아니라, 오히려 주(主)님께서 위대한 결정들을 내리는 시기였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아버지의 직접적 현존 –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그는 더 이상 개인적인 세라핌천사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았습니다.) -와의 홀로 친교를 나누는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나머지 지상 생애를 위한 정책과 행위들을 통제하게 될 큰 결정들에 하나씩 도달하였습니다. 헤르몬 산에서 있었던 분투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뒤섞였고, 더 나아가 모든 위대한 선지자와 인간 지도자들이 이러한 금식과 기도의 기간을 가지고 그들의 공생애를 시작했을 것이라는 관습들 때문에, 큰 시험이 있었다는 전통이 나중에 이 고립의 기간에 덧붙여졌습니다. 새롭거나 심각한 어떤 결정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자신의 영과의 교제를 위하여 은둔하는 것은, 예수께서 항상 해오던 실천적 습관이었습니다.

136:4.11 (1515.5) In all this planning for the remainder of his earth life, Jesus was always torn in his human heart by two opposing courses of conduct: 나머지 지상 일생을 위한 모든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두 가지의 상반되는 행동 과정들로 인해 항상 심정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136:4.12 (1515.6) 1. He entertained a strong desire to win his people — and the whole world — to believe in him and to accept his new spiritual kingdom. And he well knew their ideas concerning the coming Messiah. 그는 자신을 믿고 그의 새로운 영적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사람들 –과 온 세상 –을 설득하고 싶은 강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오실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36:4.13 (1515.7) 2. To live and work as he knew his Father would approve, to conduct his work in behalf of other worlds in need, and to continue,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to reveal the Father and show forth his divine character of love. 그의 아버지가 승인하는 삶을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살며 일을 하는 것, 곤경에 처한 다른 세상들을 위하여 그의 일을 수행하는 것과 그 나라의 설립에 있어서, 계속 아버지를 계시하며 그분의 신적 성품인 사랑을 계속 보여주는 것.

136:4.14 (1515.8) Throughout these eventful days Jesus lived in an ancient rock cavern, a shelter in the side of the hills near a village sometime called Beit Adis. He drank from the small spring which came from the side of the hill near this rock shelter. 이러한 중대한 시간들 내내, 예수님은 언젠가 바이트 아디스라고 불리던 마을에서 가까운 언덕 옆에 위치한 고대의 은신처인 바위 동굴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이 바위 피난처 가까이에 있는 언덕 옆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샘에서 물을 마셨습니다.